-10년과 +10년 사이, 기술적 사춘기와 멸종위기사랑에 대하여

January 28, 2026

얼마 전 앤트로픽 CEO인 Dario Amodei가 쓴 에세이 제목에 '기술적 사춘기(The Adolescence of Technology)'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아마도 칼 세이건의 책 제목을 차용했을 것이다.

그 에세이에서 그는 AI를 활용하며 매일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새로운 무언가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상태를 사춘기에 비유한다.

중요한 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범람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처럼 새로운 도구가 나왔고 그걸 잘 쓰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흐름과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은 일하는 방식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느낀다.

도구의 추가라기보다는 사고 방식과 역할 정의가 바뀌는 변화에 가깝다.

과거의 변화가 "무엇을 배우느냐"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변화는 "어디서 판단하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 무엇을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는지보다
  •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지
  • 어떤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는지
  • 어떤 제약과 구조를 선택할지에 대한 판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10년차가 되었다.

그래서 이 변화는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회고가 아닌 중간 점검 👨🏻‍🔬

이 글은 성과를 정리하는 글도 커리어 가이드를 쓰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앞선 10년을 한 번 돌아보며 다가올 10년을 어떤 태도로 맞이할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고 싶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나는 지금 기술적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멸종위기에 들어선 기존의 어떤 방식들을 아직도 놓지 못한 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만들면서 시작된 엔지니어링 🏁

사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살려 개발자가 되겠다는 확신은 없었다.

전환점은 졸업 프로젝트였다. 팀을 꾸려 하나의 제품을 만들었다. 기획도 했고 직접 손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IoT가 유행이었고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해 병원 환자의 링거 잔량을 모니터링하는 간호사용 앱을 만들었다.

그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메이커'로서 재미를 느꼈다.

그땐 엔지니어라는 포지션이 단순히 주어진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역할이 아니라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위치라는 감각이었다.

말로 설명하는 대신 무언가를 만들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수천 번 반복이 만든 근육 💪🏻

첫 커리어는 솔루션 기반 SI 회사에서 시작했다. 다양한 도메인과 요구사항을 빠르게 접했고 수천, 수만 번의 반복 작업 속에서 매번 '이게 최선일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구조
  • 조금이라도 덜 망가지는 코드
  • 조금이라도 다음 사람을 덜 힘들게 만드는 선택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이후 커리어를 버텨준 기초 체력을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 살아 남기 위해서 ❤️‍🩹

솔직하게 말하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당시 시장에는 자바 개발자가 넘쳐났고 나는 그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명확한 차별점을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무렵 SPA가 등장했고 React·Vue·Angular 같은 프레임워크가 퍼지며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라는 역할이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이 변화를 기회라고 느꼈다.

UI를 만드는 일을 넘어 브라우저라는 제약된 환경 안에서 복잡한 상태와 흐름을 다루고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하는 역할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명확하게 프론트엔드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졌다.


더 많은 유저를 만나고 싶었다 👥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부동산 P2P 서비스를 제공하던 테라펀딩으로 이직한 이유는 단순했다. B2C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 대고객 서비스를 개발했고
  • 스타트업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과 불확실성을 경험했으며
  • 3–4명 규모의 팀을 리드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다

제품이 곧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환경은 기술 선택 하나 구현 방식 하나에 이전보다 훨씬 큰 책임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회사의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졌고 현실적인 이유로 또 한 번의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다.


노블한 기술이 와우 포인트를 준다 🤩

하이퍼커넥트는 명확히 기술 회사였다.

하이퍼커넥트에 다니던 시절 대표였던 샘은 WebRTC를 처음 적용한 서비스를 통해 기술이 충분히 '노블(noble)'해야 사용자에게 와우 포인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단순히 기능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경험을 기술로 가능하게 만들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임팩트가 생긴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하쿠나(Hakuna)라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의 흥망성쇠를 4년 넘게 지켜보고 직접 만들어가며 경험했다.

이 기간 동안:

  • WebRTC 기반의 라이브 스트리밍 아키텍처에 깊이 관여했고
  • 웹뷰, React Native, 웹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플랫폼을 다뤘으며
  • 여러 차례 면접관으로 참여해 3명 이상의 팀원을 직접 채용했고
  • 4명 규모 팀의 리드를 맡아 사람과 기술 모두에 책임을 졌다
  • 하쿠나 2.0 프로젝트에서는 웹 애플리케이션 리라이트를 리드했다

이 시기의 나는 분명히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복잡한 문제를 구조로 풀고 성능과 안정성을 고민하며 시스템을 이해하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강의와 멘토링, '왜'를 언어로 풀어내기 👨🏻‍🏫

하이퍼커넥트에서 일하던 시기 내 관심은 회사 안의 문제를 넘어 회사 밖의 개발자 생태계로도 향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패스트캠퍼스에서 진행한 초격차 패키지 React 강의였다. 실무에서 쌓아온 경험을 정리해 강의라는 형태로 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요구했다.

"어떻게 구현했는가"를 설명하는 것보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를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강의를 준비하며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판단들과 습관들을 다시 구조화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사고 방식도 한 번 더 점검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Kakao와 Elice를 통해 멘토링에도 참여했다.

멘토로서의 역할은 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정리해주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각기 다른 배경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기준들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자주 마주했다.

이런 외부 활동들은 기술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더 배우게 했다기보다는 내가 가진 경험의 외연을 넓혀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회사 안에서만 통하던 맥락을 회사 밖의 언어로 설명해보는 경험.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엔지니어인가"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MAU 2,000만, 그리고 AI로의 방향 전환 📲

하쿠나가 갑작스레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며 나는 이직을 통해 다음을 고려하게 됐다. 대기업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외주에 의존하던 서비스를 내재화하는 초기 단계에 합류해 빌드업을 경험했고 리액트 네이티브를 엔터프라이즈 레벨에서 다뤘으며 MAU 2,000만 규모의 앱을 개발하는 경험도 했다.

다만 AI의 발전 속도를 급격하게 체감하면서 AI 중심의 회사로 더 빠르게 이동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AI로 유저 임팩트를 도모하다 🤖

현재 나는 AI 기술로 비즈니스를 만드는 회사 마크비전에 있다.

AI를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임팩트로 연결하는 일에 직접 기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기술적 사춘기와 멸종위기사랑 🦕

AI가 등장한 이후 내가 10년 동안 쌓아온 많은 점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나를 설명하기 부족해졌다는 감각도 함께 따라온다.

AI를 쓰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작업에서도 나는 여전히 구조를 나누고 추상화를 고민하고 컴포넌트의 책임을 정의한다.

이건 AI를 신뢰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결과보다 맥락이 남는 지점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에 가깝다.

많은 작업들은 AI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최종적으로 남는 형태가 어떤 구조와 의도를 갖게 될지는 여전히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효율만 놓고 보면 이런 선택들은 설명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작업 방식이다.

돌아보면 이건 기술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오랫동안 몸에 밴 판단의 흔적에 가깝다.

나는 이 감각을 멸종위기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느끼는 기술적 사춘기는 새로운 기술을 몰라서 오는 불안이 아니다. 사라질 걸 알면서도 여전히 존중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10년을 향해 📈

앞으로의 10년은 이 사랑을 계속 붙잡는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어떤 방식은 사랑했던 기억으로 남겨두고 어떤 선택은 더 과감히 내려놓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꽤 비슷한 상태에 가깝다. 무엇이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고 어디로 흘러갈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변화의 물살을 피하기보다는 기꺼이 타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해진 역할도, 정해진 도구도, 정해진 답도 없이 필요해지는 방향으로 퍼지듯 성장하고 싶다.

이 글은 그 결론을 미리 내려두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다시 열어두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10년과 +10년 사이에서 나는 지금 기술적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